2조 제약사 일군 '박카스 신화'…강신호 회장 별세

입력 2023-10-03 18:21   수정 2023-10-04 09:53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지낸 ‘국내 제약업계 맏형’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이 3일 새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강 명예회장은 1927년 경북 상주에서 고(故) 강중희 동아쏘시오그룹 창업주의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1952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내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딴 국내 1세대 의학자다. 1975년 사장으로 취임해 2017년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42년간 동아쏘시오그룹을 국내 대표 제약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그가 취임한 1975년 145억원 안팎이던 매출은 지난해 2조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국민 피로회복제 ‘박카스’ 주역
1959년 동아제약 상무로 처음 경영에 참여한 그는 “기업의 제1 목표는 이윤 추구가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고 여겼다. 당시 공개채용제도를 도입해 경력직 위주였던 채용 방식을 바꾸고 영업 현장에 약사를 투입해 전문성을 높였다.

6·25전쟁 후 국민의 건강 수준을 높이기 위해 1961년 자양강장제 박카스를 선보였다. 독일 유학 시절 함부르크시청 지하홀에서 본 바커스 신상에서 이름을 따왔다. 알약과 앰풀제를 거쳐 ‘국민 피로회복제’ 타이틀을 얻은 드링크제 박카스D는 1963년 8월 완성됐다. 출시 이듬해 시장 1위에 올랐다. 박카스D는 활력을 선물하고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시대의 대명사’가 됐다. 1967년부터 지주사 전환으로 동아제약이 분할되기 전인 2013년까지 47년간 이 회사를 국내 제약사 1위 자리에 올린 주역이다. 2021년까지 누적 판매량은 222억 병, 5조6000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판피린, 써큐란, 가그린 등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강 명예회장은 훌륭한 작명가였다. 스페인어로 전진을 뜻하는 현대자동차의 아반떼는 그가 이름을 지어 정몽구 회장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산 1호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도 연인, 결혼 등의 뜻을 담은 라틴어 ‘자이지우스(zygius)’와 해결사라는 뜻의 ‘데노도(denodo)’를 합친 조어다.

강 명예회장은 “기술이 없는 국가는 장래가 없다”고 여겼다. 1977년 제약업계에선 처음으로 기업부설 연구소를 세웠다. 1988년엔 경기 용인에 신약 안전성을 실험할 수 있는 우수 연구소 관리 기준(KGLP) 시설을 갖춘 국내 첫 신약 개발 연구소를 열었다. 1994년 항암제 후보물질 ‘DA-125’를 국내 첫 임상시험용 의약품으로 승인받았다. 이후 슈퍼 항생제 시벡스트로, 당뇨병 치료제 슈가논 등 국산 신약을 개발했다.
재계의 큰 형님…민간 외교관으로 활약
2004년엔 제약 경영인 중 처음으로 한경협 회장에 올라 민간 외교관으로도 활동했다.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류진 한경협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강 명예회장의 생명존중과 나눔 정신, 청년 같이 뜨거웠던 기업가 정신은 경제계의 소중한 유산”이라며 “숭고한 뜻을 후배들이 이어가겠다”고 했다.

1998년엔 외환위기로 시름하는 대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청년들과 함께 걸으면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사회의 동력이 돼라’고 격려했다.

“인생이란 기억했던 일은 잊게 되고 얻은 것은 언젠가 잃게 마련이다. 물질 또한 인생살이에 필요한 만큼 있으면 족한 것이 아닐까? 여분이 있으면 나누어 주기도 하고 버려야 할 때는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먼 인생길에는 짐이 가벼울수록 좋은 법이다.”

2002년 동아제약 70년 사진집에 당시 70대의 강 명예회장이 남긴 말이다. 그는 박카스D 탄생 60년을 맞은 올해 짐을 덜고 인생길을 마감했다.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다. 장례는 동아쏘시오그룹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자녀 정석·문석·우석·인경·영록·윤경씨가 있다. 발인은 5일 오전 6시30분.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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